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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ing memories by one progress at a time.

살아있는 어느날 7월 2일

오늘도 살아있는 어느 날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대화하고, 기쁨 또는 다른 여러 감정들, 생각들을 나눈다. 살아있다는 건 그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너무 좋아진 요즘은, 무선키보드 등 다양한 디바이스(device)를 활용해서 색다른 타자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오늘은 더웠지만 선풍기 바람과 해가 진 저녁의 선선함으로 인해 내 볼을 스치는 공기는 차다.

필요를 느껴 구매한 무선 키보드는, 평점 1위를 달리는 제품을 구매한 보람이 있게, 매우 만족스럽다.

키보드를 샀다. 위 사진과 같이 생긴 키보드는 3개까지의 기기에 무선(블루투스)연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현재는 컴퓨터(노트북)와, 핸드폰(안드로이드), 아이패드(태블릿)에 모두 연결하여 호환해가며 쓰고 있다.

위에 사진에서 키보드 위에 있는 건 노트북 쿨링 패드인데, 언니가 본인이 사용하던 제품을 넘겨주었다. 이를테면 ‘물려받은’ 셈이다. 사실, 노트북을 사용하면서, 시야각을 위로해서 노트북을 올려놓고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쿨링패드를 사용하게 된 건 이제 많이 낡아서 꽤 열이 받기 시작하는 내 노트북을 위해서도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런 식의 글을 쓰는 걸 좋아했다. 왠지 독특한 표현으로 일상적인 내용의 글을 끄적거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데미안이나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독백적이면서도 장난기 있고 철학적이며 시니컬한 말투를 좋아했다.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극단적으로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라던지, 다양한 사상의 부딪힘 같은 소재들을 좋아했다.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고 다투는 것도 좋아했다.

내가 한때 향유했던 혹은 향유한다고 여겼던 인문학적 향수들을 되새기면서 컴퓨터 앞에서 너무 고지식한 일상의 글을 끄적인다. 나는 부동산 전문가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둥, 그러기 위해서는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연구논문을 잘 작성하기 위해서 방법론 세미나를 수강하거나, 몇 시간씩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실력을 향상하겠다는 단기간에는 거창한 목표들을 늘어놓고,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 있는 지 돌아보고 셈하려 한다. 나의 일상에 스치는 한 줄기 선풍기 바람에, 그것들은 아주 막연한 상상에 불과한데도, 나의 일상의 정말 많은 부분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그 동안 먹고싶었던 많은 것들을 잔뜩 먹은 날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아침에 싸갔던 두부와 샐러드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 이 도시락은 오늘하루 종일 내 가방 안에 고이 담겨만 있었다. 점심으로 칼국수 후 저녁으로 마라탕을 먹었다. 그간 샐러드 도시락 하나에 하루 식사를 의지하며, 열심히 경기도 전역을 운전해 돌아다닌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받을만한 포상이었다. 그리고, 내 의지대로 먹고싶은 음식을 먹는 것에 ‘포상’ 이니 하는 말을 갖다 붙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매일 매일 이와 같은 음식들을 먹으며 삶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경기도 이천의 한 시골동네에서 사먹은 조개(옹심이) 칼국수, 겉절이 김치와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조개를 한 개도 남기지 않고 전부 쏙 빼먹었다.

서울로 이사하면서,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그간 내가 몸을 담고, 이런 저런 인생의 폭풍 속에 잠시 쉬어갈 곳처럼 머무른 장소와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단지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이름뿐이다. 이제 내 삶속에 그들이 차지하는 부분은 많이 줄어들었고, 사실 나는 그 이유로 조금 더 편해하고 있었다. 온전히 나를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조금도 나아진 것도 변한것도 없다고 해도, 나는 한 순간 자유를 느낀다. 그건 선풍기 바람과도 같은 자유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내일도 회사에 가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리서치 팀 분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나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까지 내가 몸담았던 곳들이 내게 준 시간보다도 훨씬 짧은 단 한 달이었으니까. 잠깐 동안의 인턴십은 그래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을 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준 것 같다.

금일 내부 오피스 안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느낀 기분은 사실 ‘소외감’이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해 놓으니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랬다. 단편적으로는 모두 주어진 일들을 하는 사람들에 불과하지만, 나는 왜지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커뮤니티에 매일 출근하여 자원순환활동에 이바지하고(a little bit of euphemism doesn’t hurt) 다시 내가 사는 동네로 돌아가는 미화원이 된 기분이었다. 매우 적절하군.

내가 사수격으로 우리를 관리하고 있는 사원에게 휴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직접 포털에 접속하여 휴가신청을 올릴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는데, 사실 나의 개인 적인 휴가와 계약관계까지 이들의 손에 맡겨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불편해졌다. 자동차를 운전하며 일을 하는데, 왜 운전자 보험에 대한 사항은 전달받지 못했는가? 그리고, 개인의 휴가나 일정에 관해서 결재를 올리고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개인적인 사내 시스템의 영역까지 왜 사수라고 하는 이 또다른 피고용인에게 침범당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 남아있었는데, 내 생각에 이러한 처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용노동법에 저촉될 것 같다는 쎄 한 기분이 들고 있다. 나는 분명히 미성년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에 해당하지는 않을텐데….

이러한 우울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전에, 나는 빨리 이 상태를 벗어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다른 회사에서도 인턴으로 입사하는 경우 이러한 처우를 받았던가? 현재 회사가 인턴 월급의 경우 이전 회사보다 높았지만, 계약서의 작성이라든지, 인사담당자가 피고용인을 대하는 태도나 절차 라든지 하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이제는 내가 이 회사를 떠나게 되더라도 위에서 들었던 생각이나 처우에 대한 개선점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을 지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결국 선풍기 바람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만끽하던 나는 직장 내 처우라든지 딱딱한 문제로 돌아가 현실을 고민하는 중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어쩔수 없는 현실의 삶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아서,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누가 뒤통수를 가격하거나 후리고 도망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항상 경계의 촉을 늦추지 말 것. 정신 차리자.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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