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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을 알려주기 싫다는 공무원: 힘과 편견의 상관관계

대학원에 오게 된 것은 소득이 없는 사회적 약자가 되기를 선택한 걸까? 오늘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의 계기는 좋게 이야기하여 ‘불친절한 공무원’ 그렇지 않다면 ‘4가지 없는 공무원’이다. 국가에서 세금을 먹고 살아가는 이들의 불친절의 와닿는 바는 확실히 상점에서 느끼는 서비스맨의 불친절 만큼이나 불쾌하고 당황스러웠다.

정보공개가 어렵다. 사회경제적 파급력이 있다. 민감한 주제이다. 등의 말로 묻지도 않은 질문에 딱딱한 대답을 하더니, ‘정보공개청구’를 해주셔야 한다는 등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마치 행정적인 지식이 전혀 없이 유선으로 연락을 취했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서면으로 문의를 드릴 수 있도록 ‘이메일 주소’를 공유해 달라는 요청에는 그냥 다시 유선으로 문의를 달라는 식의 상반된 답변이 돌아왔다.

  • 정보공개 요청을 하면 되지 왜 ‘유선’으로 연락을 했느냐?
  • 메일주소를 주면 정보를 보내겠다.
  • 메일주소는 알려줄 수 없으니 유선으로 연락을 해라
  • 공문을 보내서 요청하면 되느냐?
  • 제대로 된 공문을 발송할 수 있는 기관인 지 모르겠다.

마지막에는 심지어 이런 식으로 상대방 기관 및 ‘프로젝트’의 가치 자체를 깎아 내리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매우 당황스러웠다.

내가 본 그는 ‘일하기 싫은 공무원’이다. 자리에 앉아 자기 밥그릇을 지키고, 정해진 시간 최소한의 일 거리 외에는 하지 않으며 세금에서 나오는 봉급을 받고 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 속에 거북한 마음이 가득 차올라 욕지기가 나왔다.

‘학생’/’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이 사회에서 가지는 편견도 다른 사회적 약자들에게 씌워지는 편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스스로의 일에 대한 가치까지 바래지는 듯 한 기분에 상대방이 ‘무시’ 나 ‘편견’의 태도를 갖고 함부로 대할 때 피해자가 느끼는 기분이 이렇다는 것을 실감했다.

처음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었을 때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나 시대적 흐름에 따라 ‘편견’도 바뀐다. ‘쿨함’, ‘공식적임’, ‘양지의’이러한 수식어들이 이전에 도덕적으로 폄하되거나 안좋은 ‘낙인’을 가지고 있던 행위와 만났을 때 일어나는 효과는 사실 매우 놀랍다.

‘힘’은 보이지 않지만 그 절대량이나 상관성이 미리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힘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힘을 가진 소수에 의해서 ‘옳고 그름’, ‘아름답고 추한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일부 들어맞는다. 가장 생물학 적인 관점에서 ‘힘’은 ‘아름다움’으로 표출되기도, ‘부유함’이라는 자원의 많고 적음에 의해서 가장 확실하게 평가되기도 한다.

요즘 시청률 20% 이상을 경신하며 최고 인기를 달리고 있는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 역시 이와 같은 생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륜’, ‘범죄’ 이러한 지탄을 피할 수 없는 행위들까지도 사회의 ‘강자’들이 이를 적나라하게 행할 때, 그것이 ‘쿨함’ ‘부와 지위’의 상징으로 등극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A배우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 때, 그가 하는 행위 중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편견을 내포하는 행위들 한 예로 ‘이혼’등이 발생했을 때, 대중이 이를 보다 포용적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커진다는 것이다.

물론, 위의 예와 드라마의 사례는 동일선상에서 생각하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요는 힘이 없는 약자(소득수준, 힘, 아름다움 등을 기준으로)의 경우 그 자체로 다양한 활동과 긍정적인 인식에서 배제되는 것에 너무나도 취약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트라우마’로남아 의식적 저항 없이는 취약한 이들은 더욱 취약하게,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고착화하게 될 것이다.

How do you keep your morale up while everyone’s disregarding you, degrading you, and insulting you?

Above is the essential question when such an event happens in which you are disregarded based on any one of those measures of power, including wealth, beauty, and health.

Can you disregard everybody whom you do not know? No!

스스로가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이 소중한 것도 알아야 한다.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고, 폄하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악이다.

사실 그 남자 주무관에게 거북함을 느꼈던 것은 전혀 ‘나’나 ‘프로젝트’에 관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를 폄하하고, ‘여성’으로서 밖에 유선상에서 드러나지 않은 나의 아이덴티티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듯 보이는 말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는 ‘차별’이라는 행위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적 프레임 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돌아보면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가끔 겪었을 때 정말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한국 남성 특유의’ 여성비하적 태도들이 있다.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Micro한 차원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폭력과 차별이 심리적인 충격을 줄 때, 어떻게 맞서야 하는 지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데, 사실 살기 바빠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쓸데 없다고 느낄 때도 많다. 생각보다 개인적인 경험을 사회적 행동으로 이끌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핑계를 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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