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T Blog

Hanging memories by one progress at a time.

[거미이야기] 탈피(5) (사진 주의)

핑크가 또 한차례 허물을 벗었다.

화요일부터 기숙사 방을 비우고, 거의 일주일 가량을 방에 없었는데, 역시 타란튤라는 작은 진동에도 민감해서인지 내가 없는 사이 오히려 평화롭게 잘 시간을 보낸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방에 정말 오랫만에 돌아와 핑크를 살펴보니 몸이 거뭇거뭇하고 독니 윗부분이 벌어져 하얗게 올라오는 것이 거의 탈피 직전으로 보이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이 되자 핑크가 구석에서 몸을 뒤집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스로 파놓은 굴이 너무 좁아 보여서 위에 얹어진 바크를 들어서 공간을 넓혀준 것이 도움이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탈피가 금방 끝나서 그 날 밤 바로 허물 벗은 핑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직 몸을 말리느라 뒤집어져 있었는데, 오늘 아침 다시 사육장을 확인해 보니 분홍색 털도 몇 배는 더 길어지고 거의 두 배 가까이 커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먹이를 자주 준 것도 아니었는데, 핑크의 몸집이 이렇게나 커진 것이 뿌듯했다.

엄지손가락과 비교한 핑크의 크기, 이제 온전히 몸통만 엄지손가락 앞마디만 해진 것 같다. 다리 길이도 상당히 길어서, 전체 크기를 보면 엄지손가락만 할 것 같다.

Tada! 핑크의 다섯 번째 탈피껍질

이번 허물은 사이즈도 정말 커서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가득 찬 느낌이었다.

제대로 된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한 건 아닌가 염려했었는데 혼자서 잘만 커준 핑크를 보니 마음이 놓이고 뿌듯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탓인지 방에서 깔때기 거미가 기어가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내가 쳐다보는 순간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은 깔때기 거미를 사진에 담아보았다.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한 깔때기 거미의 모습

처음에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문틈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는데, 그대로 밖으로 나간 줄 알았는데, 어느틈엔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곳은 내 캐리어가 있는 곳….(안돼..)

Feat. 깔때기 거미의 씁쓸한 최후…

거미를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불필요한 살생은 정말 하고싶지 않았는데, 나도 사육 초보자라서 인지 사육장이 아닌 방안에서 돌아다니는 벌레에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캐리어 밑으로 들어간 깔때기 거미를 나오게 하려 캐리어를 들었다가, 빠르게 움직이는 녀석에 놀라 그만 캐리어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혹시라도 살았을까 기대를 품은 것과는 반대로, 내 방에 등장했던 깔때기 거미는 캐리어 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방금 사냥을 한 것인지 무언가를 물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저정도 크기로 자란 거미를 한 순간에 보내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녀석은 어쩔 수 없는 해충인 것이다… (죽은 거미는 곱게 휴지로 싸서 보내주었다.) ㅠㅠ미안하다 거미야.

새로운 걱정거리…

그래서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나는 과연 핑크를 핸들링 할 수 있을까? 움직이는 핑크를 실수로 던져버리거나 죽여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나는 핑크의 안전을 위해 당분간 핸들링을 보류중이다. 일전에 체험센터 등에서 큰 타란튤라를 손에 올려본 적이 있기는 한데, 핑크를 데리고 핸들링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조금 더 단단한 심장을 갖게 될 때까지, 핑크에게도 잠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려고 한다.

그럼 이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