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가족여행의 끝에서

이 글은 2박 3일 짧은 가족여행이 끝나고 나는 다시 이상으로 돌아왔다. 아주 짦은 시간 동안이지만, 어린 시절 부터 서로의 모습을 지켜봤던 가족들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의 내면에서부터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업무는 잠시 내려놓고,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것, 이루고 싶은 평화로운 미래의 모습,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살아가게 되는 것에 대하여 잠시 현실의 제약들을 내려놓고 내면의 거울에 가장 이상적인 감정과 바람들을 비추어 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소박한 소원들은 사실 꽤 이룰만한 일들인 지도 모른다.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는 일에 익숙해 지고 나면, 생각을 정리하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는 성과를 위해 글을 쓰게 되기도 한다.

나는 아직 글을 쓰는 작가라기에는 부족하고,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실 생각을 덜어놓을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익명으로 글을 쓴다. 익명으로 글을 쓴다는 것의 장점은, 항상 떳떳해야할 필요가 없고, 누군가의 미움을 사 공격적인 반론의 표적이 되는 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가끔 카톡으로 많은 공감을 얻은 브런치 작가들의 칼럼이 내게 배달 되기도 하는데, 가장 최근에 그와 같은 경로로 읽은 글은 한 잡지사에서 일하는 싱글 여성직장인의 경험담이었다. 유난히 여성에 박하다는 말을 듣곤 하는 직장에서 그녀가 경험한 남자 상사들의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태도, 결혼을 하지 않는 싱글인 작가를 배려하지 않은 걸걸한 입담들, 그리고 거기에 ‘개저씨’와 ‘맘충’이라는 신조어를 설명하며 반박을 마다하지 않은 신랄한 태도의 작가까지, 비슷한 여초의 환경인 패션 디자인업계에서 일하는 언니에게 그 포스트를 공유했었다. 그러나, 사실 온라인 상에 만연한 남-여 대결구도의 성적 비하발언 또는 차별적 발언은 굳이 내 세상에서 마주치지 않은 수많은 익명의 남성, 또는 여성들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면서 직장내 성희롱 예방 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공공기관이나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근로자라 해도, 이런 모든 교육에 성실하게 참여하기는 힘든 반면에 그 날의 교육은 발표자가 참 다양한 곳의 사례들을 사진이나 입담을 통해 풀어주었다는 것으로 기억에 남았다. 신입생 환영식에서 일어난 노예 경매로 불거진 남성의 성적 대상화 논란,  사실 사례들에서는 굳이 성희롱과 성적 대상화의 피해자를 여성으로 국한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추가한 발표자의 노력이 돋보였다. 이러한 일반화를 통해 남성 여성간 대결 구도로 성희롱 사례를 몰아가게 될 경우 사회 전체에 심각한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는 물론, 피해자와 가해자 중심으로 이루어 져야 할 별개 사건의 분석 및 해석을 자칫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 그에 대한 설명이다. 나는 이러한 사례들을 개개인의 문제와 갈등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했다.

기분이 나쁜 것과, 상대방의 무례함을 평가할 척도는 어디인걸까? 내가 너무 과민한 것인지 항상 주변을 둘러보고 대화를 하며, 그 적정 선을 찾아보려 하지만, 사실 그런 내밀한 이야기들을 쉽게 터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을 때, 회사만큼 몸을 사리기 쉽고 얼떨 결에 당하고 넘어가는 공간도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나의 의견과 감정을 토로하는 글을 쓸 때 적어도 나를 아는 누군가가 그 글을 읽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것을 진정한 내 글이라 부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처음 블로그를 만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의 감정은 만신창이였고, 지금까지 내게 일어난 일들을 어딘가에 토로하고 그 억울함을 밝히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사실, 내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도, 그 비명을 들어야 하는 이의 고막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충분한 배경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나는 불완전했고, 사실 그 당시 스스로도 나 자신이 누구인지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자아인식 및 자각을 갖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 내가 다니는 직장, 내가 나온 학교 등의 공동체에 의해 정해지고, 만들어지는 거라고. 내가 잘 알지 못한 채 들어갔다가,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온 공동체며 조직은 몇 몇이 있다. 직장의 경우, 이를 굳이 개인의 자의식과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아도 좋을 수 있을 정도로, 살짝 발을 담궜다 빠져나왔던 적도 있다. 견디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원하는 분야나 일을 찾아 나오게 된 경우였고, 항상 내게 주어졌던 기회 안에서는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앞길을 축복해 주며 기쁘게 보내주셨던 사회의 선배이자 어른들께는 아직까지도 너무 감사한 마음 뿐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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