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행동으로는 많은 일들이 있다. 그리고, 어느 이야기에나 주연과 조연이 있듯이, 그런 행동이 미치는 여파도, 그리고 A라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수 많은 인간행동의 모습들도 다양하다. 가장 손쉬운 일반화로 사회적 약자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인간행동의 범위와 양식은 보다 나은 여건에 있는 사람이 겪는 행동의 양식들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이,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과 같은 현실적인 잣대와, 외모, 매력, 신체적 강함이나 건강과 같은 약하게나마 더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요소들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지는 답하기 어렵다. 

실제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런 우울이나 어두운 감정들이, 주변의 안좋은 태도나 반응을 불러 오는 건지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렇지만 불평등하거나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여 마냥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힘든 상황에 직면하여 두려움과 어두운 감정들을 경험하는 것은 누구나 같지 않을까. 사회와 타인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있다, 라고 하는 간단한 사실로 그저 감동받거나 사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가질 수 있을까?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선한 사람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유대관계들이 허울좋은 거짓이나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위험한 양면성을 가진 것으로 느껴진다면, 과연 그 사람은 사회나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요는 기대를 낮추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사람과 사회의 긍정적인 부분에 집중하며, 성장의 가능성에 희망을 기대어 매일을 살아가는 것. 기대를 낮추면 된다. 나는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매우 좋아했다. 많은 세월을 산 지식인인 노인이 된 철학자가 행복에 대해 너무나 공감할 수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책에서도 행복은 만족의 기준치를 낮추는 것으로 타협해야 하는 상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그렇지만 정신이 노력한다고 해서 절대 얻어질 수 없는 마음의 행복이 분명 존재한다. 이건 믿음에서 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외부의 변화나 자극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일까. 이러한 방식으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면, 그건 불행한 것일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 당하거나, 이유없는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과연 사회나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 현재 나로서는 답할 수가 없다. 아무런 이유나 설명 없이 끔찍한 사고에 휘말린 사람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이번에는 운이 없었으니, 앞으로는 괜찮을 거야 라는 막연한 생각에 기대야 하는 지도 모른다. 

아무 이유 없이 심장이 욱신거리고 아플때, 그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할 수 없을때,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내어놓게 되는 것. 그래도 그 이유를 생각하고 유쾌하지 못한 답변이라도 내어놓으며 스스로 위안할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의 내면에 자리한 인간성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인간성 회복, 개인성 회복, 주체성 회복. 현실적인 제약과 맞물려 건전한 자존감을 키우기 어려운 상황인만큼, 사색과 성찰이 필요하다…

요즘 글을 읽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강렬한 이미지와 색채들, 삶의 단편적인 것들이 사색과 성찰, 마음의 소리들을 대신해 우리의 시선을 가져가는 것 같다. 스스로가 글과 사색으로부터 멀어지고 나서 드는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참 철이 없다. 그렇지만 철드는 가슴은 무겁고 답답하다. 철들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사는 것도 행복을 위한 하나의 해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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