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소리들 일깨우기 (Awakening the inner voice)

어느덧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그 시간들을 살면서 내 모습은 여러 번 바뀌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나의 모습은, 순수하고 행복했던,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던 예쁘고 마냥 밝았던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때 까지의 내 모습. 그리고 점점 사회와 친구관계에서 어두운 면 어렵고, 자의식이 과잉되는 지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던 중학교 이후의 내 모습들. 나는 그 때부터 항상 우등생이었던 언니와 같은 학교를 선택한 까닭인지 단짝이었던 친구들을 모두 다른 학교로 떠나보낸 탓인지, 제대로 친구를 사귀지 못했었다. 그저 취미가 같은 한 무리의 친구들과 때때로 어울리면서 묵묵히 공부를 했다.

내게는 정말, 공부를 잘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 특별한 점이 없었고 나도 모르게 주변사람들의 인정과 감탄어린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을 때즈음, 나는 유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남모르게 꿈꿔온 일이었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도피처럼 해외 유학을 선택하게 된 것은 얄궂은 타이밍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문화충격을 받았으며, 평소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 애썼지만, 생각만큼 잘 버텨내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된 채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를 알던 주변의 친척들과 가족들 모두가 불어난 내 모습에 놀라고 안타까워 했다.

과거의 완벽하지 못했던 모습들에 집착하는 건 분명 좋은 생각이 아닐 지 모른다. 나는 악착같이 살을 뺐고, 운동을 열심히 했고, 비록 1년 늦게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기는 했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했던 결정들을 후회하지 않지만, 돌아보면 참 파란만장했다.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지만, 사실 지금까지 내가 성취한 것들을 돌아보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항상 한 발 뒤쳐져서 느리게 모든 일들을 깨닫고 실천해 나갔으니까.

내게는 사랑도 느리게 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첫사랑의 추억은 대학교 때이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랑이란 감정은 사람을 쥐고 흔드는 불안정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에 충실하게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약점이 되는 감정들로부터 나를 철저히 격리시키고 배제하고,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사랑 앞에서 남과 나의 경계는 점차 분명해 진다. 결국 사랑의 끝에는 가족이라는 나의 중심을 감싸는 분명한 선이 존재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어느 순간 사랑에 사로잡혀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너무 멀리까지 나를 내몰기도 했다.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를 내가 밖에서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그 것이 너무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이미 반쯤 부서져 버린 울타리 안으로 돌아오자 전쟁이 끝나고 난 폐허 속에 비치는 한 줄기 햇살 아래 선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나의 안전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안전하던 때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고 아름다움을 생각나게 했다.

지금 나는 아직 사회초년생의 티를 벗지 못한 어설픈 사회인이 되어 있다. 내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면서, 나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걷고 있다. 내 인생에서 그리운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 지나간 인연들을 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도 방향도 들여다 보려 애쓰지 않는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부터 내가 영적으로 매우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게 가장 영적으로 충만했던 시기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베들레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내 안에 숨겨진 영성을 일깨우고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도로서 우리가 믿음을 통해 얼마나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지를 보여준 경이로운 신앙공동체였다고 생각한다. 교회 안 곳곳에는 사랑이 충만했고, 특히 내가 만나고 함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던 교회심기공동체(몇 세대의 가족으로 구성된)는 사랑이 넘치는 작은 성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영혼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닥쳐온 경제적인, 그리고 안전의 위기로 인해 떠나보냈다. 나는 사실 그들이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한 발짝만 떨어져 나와도 너무 쉽게 남이 될 수 있는 이들의 사랑은 내게 가까이 해선 안되는 빛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생의 어느때라도 그 빛에 다시 가까이 갈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 모든 이들에게 일말의 원망이나 어려움의 감정을 품을 리 없다. 나는 행복하게 그들의 가족이 될 것이다.

신앙에 대한 불신과 상처를 가지게 된 것은 사실 그 다음의 일이었다. 나는 결국 가족보다도 더 큰 사랑을 느꼈던 그 작은 공동체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비행기일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그 곳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선택했다. 내게는 연고지가 없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안전의 위기가 너무 심각했다. 나는 지속적인 감시를 당했고, 심지어 온라인 상으로 나의 신상이 턱없이 공개되고 퍼지는 어려운 문제를 겪게 된 것이다. 나를 전혀 모르는 남, 심지어 나보다 매우 어리거나 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던지는 비난이나 모욕의 말은 그때마다 큰 충격과 상처가 되었다. 나는 지금 그런 일들에 익숙하다. 병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무심한 내 모습을 순수한 자의식의 눈으로 바라볼 때면 나는 정말 크나큰 슬픔을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일까. 나라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고귀한 눈을 잃어버리고, 아물지 않은 상처에 진흙을 덧바르는 듯한 기분으로 스스로를 방치했다. 상처는 옹이가 되어 언제라도 내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돌출된 부위로 남았다.

 

옹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옹이 / 류시화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떄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를 묻기 전에, 스스로를 다시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을 것인지를 물어야 했다. 하나님의 사랑마저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죄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부모가 사랑할 수 없는 자식, 가장 가까운 이도 가까이하기를 달가워 하지 않는 버림받은 존재, 그것이 바로 나라면 나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면 이런 물음을 던지는 자체로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었을 텐데도, 그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사랑의 메세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영적 양식을 찾아야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덮어둔 채 들추어 보지 않았던 성경책 대신, 시집을 구매했다. 나는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쓸 때, 나는 썩은 감정과 절망의 덩어리들을 토사물처럼 게워내곤 했다. 그러나 그런 간헐적인 감정의표출에 언어적인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다. 절망의 언어를 시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에밀시오랑은 나의 뮤즈가 되었지만, 나는 스스로 겪은 일들을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하는 사심어린 팩트 없이 오로지 영감이나비유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초연해 지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내 안의 쌓인 독을 스스로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자정작용하지 못한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리거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다시 성경책을 꺼내 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로 머무르게 될 것 같다.

 

내가 신앙생활을 삶에서 내려놓고 잠시 스스로에게 유예기간을 준지도 어언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마음의 응어리를 내려놓지 못해, 스스로 녹여내지 못한 단단한 내면을 감추고 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숭배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삶. 자아성찰을 통해 이러한 나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싶다. 사랑하는 일들을 하고, 비록 몸은 바쁘게 달리고 있더라도 마음이 풍요하고 여유로울 수 있도록, 삶 자체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모습으로 다시 스스로를 탈바꿈하고 싶다. 누군가는 다른 이의 행복을 비웃고, 그들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할 지라도, 저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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